숙자 할머니
-샌디에고 어느 거리
오후가 되자 도로변 가지런히 정리된 정원에서는 스프링쿨러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히피 스타일의 한 할머니가 그곳에 혼자 앉아 있다. 세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 고정된 시선으로 그 할머니는 한쪽 손바닥을 뻗어 흩어지는 물방울을 만지고 있다.
은발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사실 그는 며칠간 계속 그 할머니를 우연히 이 거리에서 보고 있으며 쇼핑 카트에 잔뜩 옷가지 등을 실은 채 배회하는 그 여인을 그는 숙자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노숙자라는 용어를 굳이 쓰고 싶지 않거니와 그새 친근감이 들어서 이기도 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의 눈은 볼 수 없으나 입가엔 미소가 살짝 그려져 있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기는 거부하는 모습이나 스프링쿨러의 빛나는 물방울에게는 다정하게 뭔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좀 더 쌀쌀해 지면 그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