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ting
  • date
    1996
  • title
    집 나온 여자 A Women Who Ran Away from Home
  • SIZE=height×width ( cm )
    60.6×72.7cm
  • Material
    Acrylic on canvas

1집나온여자 Acrylic on canvas 72.7×60.6cm1996.jpg

 

 

 

 

 

화실 운영하던 시절 
자주 저녁을 때우던 어느 오뎅집 

흘낏 본 그녀는 선 자리에서 무려 여섯개나 오뎅 꼬치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어정쩡하게 선 채 저녁을 해결했다

 

 

 

그녀의 <집 나온 여자>는 아이를 업고 집을 나온 여자가 늦은 밤 허기를 때우기 위해 어묵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여 준다. 아마도 부부 싸움 끝에 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를 들쳐 업고 무작정 집을 나온 여자 같다. 정작 집을 나오긴 했지만 아마도 종일 끼니를 걸렀을 테고, 결국 배고픔을 이길 수 없어 길가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먹는 데 너무 열중하는 표정과 동작에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이 황당한 풍경 속에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라고 단순히 이야기하기에는 더 복잡하고 섬세한 그 무엇을 읽게 된다. 그것은 삶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다. 단순하고 유머러스한 선, 그리고 삶의 구체성을 더욱 미시적으로 포착해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총체적인 은유에서 고도로 압축화 된 묘사법이 돋보인다. 작가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애정을 가지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주관적인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소통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촌철살인적인 유머를 담은 이야기를 아주 능청스럽게 구사한다. 가족 내에서 권력이 없는 자녀와 여성은 폭력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래서 여성 운동은 가장 일반적이고 경시되어 온 폭력 범죄 중의 하나인 부인학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남성 권력과 여성 종속의 근원은 무엇일까?

 

(중략) 집을 나온 여자는 갈 곳이 없고 받아 줄 곳도 없으며,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기에 다시 폭력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그 굴욕적인 가부장제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간다. 어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후에 말이다.

 

 

 가족을 그리다(바다출판사)- 박영택(미술평론가) 글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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