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도 몇 번씩 대단지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새로 업데이트된 내용의 배달음식 광고책이 수북하게 쌓인다. 번들거리는 컬러판 종이의 책들은 부피도 작지 않다. 돈과 연관되어 있는 정보들은 정말 신속·정확하게 무료로 배포된다.
이달의 문화행사가 궁금하다
얼마 전 보게 된,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가 제작한 '예술문화축전 전반전'의 문화행사 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4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중앙동 일대에서 펼쳐지는 지역 문학·미술·음악·연극·영화 등의 모든 문화행사 일정이 날짜별로 매우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 기간에 그곳을 찾아가면 헛걸음하지 않고 어떤 문화행사든 접할 수 있었다. 무작정 나섰는데 멋진 무언가를 만날 수 있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다.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부산 지역 어디선가에는 오늘도 아름다운 연극이, 무용이, 그림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조용히 관계자와 주변의 지인들, 그리고 소수의 문화향유자들과의 소통에 만족할 뿐이다. 문화생산자인 나로서도 늘 자괴감을 느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문화소비자이기도 한 나로서 드는 생각이 있다.
오늘은 어떤 문화행사가 있는지 살펴볼라치면 일일이 문화기관 웹에 들어가 검색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롭지 않다. 물론 지역신문의 문화단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또한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모든 장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부산시민의 문화정보지는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문화정보를 알 수 있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울수록 문화는 더욱 소수의 누리는 자들만 누리게 된다. 관심을 가지든 그러지 않든 문화정보를 상시적으로 배포하고 알려 주는 일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상당수 시민은 사실 몰라서 못 간다. 문화를 누릴 권리를 못 가지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의 개인 블로그 등을 보면 거의 전문가 수준인 문화 향유자의 글이 많이 있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능력과 관심 또한 많아 잠재적 문화소비자들이 적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한 친구의 얘기로는 꽤 오래전부터 그 달의 문화행사 전체가 포켓형 책자에 빽빽이 적혀 있다고 일러 주었다. 또한 포켓형 책자를 저렴하게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파리시민이 문화를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접하고 또한 그 수준이 상당한 이유를 알 듯한 대목이다.
서울처럼 거대도시도 아닌 부산에서 다양한 문화 영역의 행사를 모두 취합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간단한 문화정보가 담긴 '500원짜리 부산아트 가이드'와 같은 소박한 형식의 흑백가이드북 혹은 스마트 폰 앱(애플리케이션)도 좋을 것이다. 공공시설이나 문화시설 혹은 신문가판대, 부산을 찾는 외부인들이 통과하는 역·고속버스터미널·공항에서 월별 문화 행사 가이드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 같다.
문화는 타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
당장에 시간이 안 되거나 엄두가 나지 않아도 문화행사에 관련한 정보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조금은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실제 발걸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많이 접할수록 몸에 자연스레 배어 들어 커서도 문화향유의 습관이 생긴다.
친구나 동료·가족과 함께 어느 한 작품을 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이 그렇게 대단히 어렵거나 어색한 일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거나 더 나아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고 대화를 통해 공감이나 반론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일들은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예술작품에는 어떤 형태로든 그 시대 인간의 삶이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은 나와는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고단한 삶이지만 작품들과 가까이하는 동안 삶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