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3년 11월 한달간 부산일보에 기고했던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입니다
총12편의 글 중 2번째 글입니다.
혼자 먹는 점심
"57분 교통상황입니다"
낭랑한 목소리의 언니가 도로교통상황을 경쾌하고 빠르게 알려주고 있다.
'2시가 다됐네...'
전화가 오지 않는 이상 작업실에 있는 내내 거의 입을 닫은 채로 있는 내게,
유일하게 여러 번 그것도 아주 크게 입을 벌리게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배는 좀 고프지만 마음이 별로 내키질 않는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밥은 이미 식어 굳었을 테고 성의 없이 챙겨온 반찬들도 식구들이 별로 손대지 않아 처치곤란인 것들이니-.
더군다나 나 혼자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점심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자취시절엔 혼자 먹는 끼니가 싫어 밥상 맞은편에 거울을 놓아두고 거울 속 나를 밥친구로
삼은 적도 많았더랬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라디오 DJ가 들려주는 실없는 얘기에 히죽 웃어대며 도시락을
비워 간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러다보니 친구와의 약속은 거의 반드시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시간으로 잡는다.
이런 울적한 느낌은 혼자 작업하는 나 같은 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이 겪는 것들이다.
아예 점심을 거르거나 대충 물에 말아먹거나 고추장에 비벼 후딱 해치우기 일쑤고
설거지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편법들(국그릇에 밥·국 모두 담기 등)도 동원된다.
식사를 한다는 행위는 그저 입에서 식도에서 위로 음식물을 전달한다는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혼자 먹는 점심을 매일 이어가는 수백만 이상의 울적한 이들을 기쁘게 할 획기적인 일 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