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3년 11월 한달간 부산일보에 기고했던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입니다
총12편의 글 중 8번째 글입니다.
빌리와 엘라
라디오에 좀 질렸다.
오랜만에 돌린 CD에선 천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난 가사와는 상관없이 그저 그 목소리의 부드럽고 가느다란 떨림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삶을 느낀다.
재즈음악사에서 뺄 수 없는 보컬리스트 두 명
빌리 할리데이와 엘라 피츠제랄드.
둘 다 흑인 여성이었고 둘 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또한 둘 다 지금까지도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멋진 감성을 가졌었다.
하지만 둘은 다른 점이 있다.
빌리는 그녀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고통으로 곱씹으며 거친 톤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녀의 인생 또한 불행이 이어져 결국 단명하고 만 반면,
엘라는 가수가 된 이후 비교적 순탄한 삶을 이어가며 그녀 특유의 맑고도 깊은 세상을 오랜시간 갈고 닦으며 성숙해 갔다.
전에 어떤 이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요절하는 이와 나이 지긋하도록 작업을 지탱하는 이, 둘 다 결국 일생에 쓰는 총에너지량은 비슷하다. 그래서 공평하다."
잘 모르겠다.
고통으로도, 아름다움으로도 감상자에게는 모두 소중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민 어린 마음으로 빌리를 듣다가 , 또한 너무나도 평온해진 마음으로 엘라를 감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