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1. 시립미술관 입구의 조형물.
2. 새들에게 식빵을 나눠주는 아저씨.
3. ‘헤이시로’ 회전 초밥집에서 먹은 메뉴 중 하나.
둥근 알갱이는 아마도 생선알인 듯.
4. 캐널시티 입구에 설치된 기둥.
그 속엔 블랙라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바깥엔 왔다 간 이들의 흔적이 적힌 작 은 하트모양의 흰색 아크릴 판들이 붙어 있었다.
5. 투어버스에서 내다 본 포장마차.
후쿠오카 여행기-셋째날
역시나 아침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일행은 추위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자이후에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투어 버스를 탔어야 했지만 어찌하다보니
그곳에 가는 건 좀 힘들다는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물품 관리와 관객 설명을 위해 작가가 꼭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선뜻 관광에 나서기도 미안한 분위기였다. 100엔 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눈치를 보노라니 김영준씨가 당번을 서겠다 했다. 후쿠오카에 여러 번 온 경험이 있는 그였다. 후쿠오카가 처음이었던 우리들은 미안해 하며, 또 신나해 하며 길을 나섰다.
전날 밤부터 발등 힘줄이 아팠던 나는 안티푸라민과 디카 밧데리를 사야해서
나서는 길에 큰 잡화점인 ‘동키호테’에 들렀다.
싸구려 상품부터 명품까지 온갖 물건이 엉켜있는 이색적인 곳이었다.
<산책과 그림과 새들의 전쟁>
오늘은 전철 탈 일이 많을 것 같아 하루 일일권을 각자 600엔 씩에 샀다.
지하철 한번 타는데 250엔 정도 했으니까 3번만 타도 600엔이 넘는다.
‘니시진’ 역에서 두 정거장 지나 ‘오호리 공원’역에 내렸다.
가운데 큰 인공호수가 있고 그 주변에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과 일본식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다들 한국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터라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천천히 산책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 했다. 일본인들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견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못 본 특이한 외래종이 많았다.
개들과, 새들과 , 오래된 나무들을 보며 걷다보니 시립미술관에 다다랐다.
지은 지는 꽤 되어 보였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전시한 적 있던 야요이 쿠사마의 노란 점박이 호박 조형물이 야외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도 특별한 기획전은 없었다.
오히려 미술관의 수준이랄까 그런 건 상설전때 더 잘 나타난다는 생각도 들어 기본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갔다.
작은 기획전 형태가 있긴 했다.
야나기 유키노리의 ‘이카루스 프로젝트’였다.
행글라이더를 타는 이가 표현 할 수 있는 느낌을 작품으로 담았다.
매체도 다양해서 조형물, 영상, 지도 설치, 인터액티브 한 작품(실제 행글라이더 운전대를 관객이 잡고 화면을 보면서 목적지로 날아간다. 물론 가상이다. 우리 일행은 동경에서 후쿠오카까지는 갔는데 부산 앞바다를 못 건너고 포기해야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느낌을 방명록에 담고 유쾌하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 들어간 방은 시립미술관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20세기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많이, 걸려 있었다.
달리(500호 이상 되어 보이는 대작), 앤디 와홀(역시 500호 크기 정도), 미로, 루오, 샤갈, 바스키아, 스텔라, 짐 다인, 마리노 마리니, ...
생각은 다 안 나지만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서도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짜증도 좀 났다.
일본의 왠 만한 도시의 시립미술관들은 이런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다.
물론 외국 대가들 작품 가지고 스스로 으스댄다는 건 우스운 일이겠지만
예술품에 댓가를 치르고 구입할 능력이 된다는 건 좀 부러운 게 사실이다. 또한 코지마 젠자부로와 같은 근 현대 일본 작가의 작품들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뜻밖의 소득이었다.
그건 작품 하나 하나에서 받는 감동이라기 보다는 (어제 아시아 미술관에서도 느낀 바와 같이) 내 나름의 어떤 맥락을 잡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다.
또 하나의 의견이 내 생각 속에 보태어 지고 또 다시 정리하게 되고...
그런 점에서 여행은 마음의 이완과 함께 어떤 깨달음도 가능케 할 수 있다.
시립미술관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온 만큼 걸어서 빙 둘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모두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슬쩍 들어섰다. 다리도 아프고 허기도 지고.
다리를 건너는 곳엔 흰 새 , 검은 새 , 회색 새 들이 각기 제 공간을 꽥꽥 거리며 지키고 있었다.
갈매기(근처 바닷물이 유입된 호수인 듯), 까마귀, 비둘기 이다.
나중에 보니 가마우지 떼들도 있었다. 다리 난간에 기대기가 겁 날정도로 그들의 분비물들이 펼쳐져 있었고 호수 안, 작은 섬의 나무는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일행 중 한명이 무심코 새들 근처로 다가가자,꽥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그에게로 확 날아오는 게 아닌가! 히치콕의 새처럼.
나중에 알고 보니 먹이 주는 사람인줄 알고 날아왔던 것이다.
먹이가 없다는 걸 알고 바로 단념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쨌거나 우리는 새들에게 무한히 자애로운 일본인들에게 감명 받으며 서둘러 나왔다.
<회전 스시를 향한 행군>
정수옥 선생이 웰컴카드(소책자)에 적힌 음식점 중 ‘헤이시로’ 라는 곳을 다음 행선지로 잡았다. 전철로 몇 정거장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으나 그 의지는 강력했다. 달리 다른 메뉴도 모르는 우리는 대장을 따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카다 역에 도착했다. 하카다항과는 또 다른 , JR을 탈 수 있는 서울역과 같은 곳이었다. 역 주위는 그래서 시끌벅적했고 모든 게 많았다. 대형 쇼핑센타. 전자상가, 서점...
우리는 거기에서 걸어 나와서, 목적지의 정확한 위치를 보노라니, 왠 걸?
어제 갔었던 캐널시티 건물 4층 식당이 아닌가!
어제 내렸던 ‘나까스 가와바타’ 역과 ‘하카다’ 역 중간 지역에 캐널시티가 위치해 있었다.
그래 뭐 어제는 1층만 봤고 오늘은 다른 층도 보자.
회전초밥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차고 비린 맛이라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갓 만든 초밥은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색깔이 다른 3종류의 접시가 있었는데 가격이 각각 틀려 남은 빈 접시를 보고 계산을 했다.
난 모듬정식(각종 튀김, 메밀면으로 구성된 세트)과 회전판을 빙빙 도는 접시 중 하나씩을 골라 내려 정수옥 선생과 나눠 먹었다. 옆 팀은 꽤 먹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본의 비싼 물가에 비하면 가격은 괜찮은 편이었다.
엄청 먹었는데도 1인당 1600엔 정도 나왔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렸다.
가게들의 느낌은.. 꼭 같은 건 아니지만 서울의 코엑스 쇼핑거리 같은 분위기와 좀 비슷했다. 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해골 캐릭터가 그려진 지갑을 샀다. 더 맘에 드는 거미줄 쳐진 지갑은 3800엔 정도라 훨씬 싼 1800엔 짜리 지갑으로 만족해야 했다.
<100엔 시티투어 버스>
물건들 구경에 시간을 너무 보냈고 또 학술팀도 오늘 입국하는지라 서둘러 전시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내일 귀국하는 티나와 성진씨는 좀 아쉬워했다. 물론 나도.
짧은 시간에 수박겉핥기라도 하려면..
그래서 도심지만 도는 100엔 투어버스를 타기로 했다.
하카타-캐널시티- 텐진 -나카스- 가와바타 마치- 기온 등을 도는 일반 버스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아니 왠 일본어안내판의 해석이 이렇게 잘되지?
평일 시간표, 주말 시간표, 여객터미널 행 버스 등등 ..
며칠 새 ,그새 일본어가 트였나?
잠시 후 우리는 모두 웃었다.
모두 한글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쿠오카에 한국인이 많이 오긴 하는 모양이다.
100엔 버스는 그냥 일반버스였다.
특별히 관광객이 많이 타는 것 같지도 않았고, 또 자주 왔다.
일반버스 가격(200엔?)보다도 싸서 도심지 짧은 거리를 다니는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도심의 화려한 불빛 속을 천천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창밖만 바라봤다. 무심의 상태.
창밖으로 강변으로 쭈욱 들어선 포장마차, 화려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 상점들, 그리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온'이라는 곳 근처는 쇼후쿠지 절 등 옛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 버스는 공회전이 금지되어 있는지, 잠시 정차 중일 때는 반드시 시동을 껐다. 루-루(규칙)를 잘 지키는 그들이다.
<오는 사람들, 가는 사람들>
순환 버스라 처음 승차지역인 하카다역에서 다시 내린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서남학원으로 돌아왔다.
이미 학술팀6명은 숙소에 짐 풀고 다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갔었던 ‘와라 와라’에 다시 갔다.
대부분의 일본 술집은 방이라도 테이블 밑의 방바닥을 깊게 파서 다리를 그곳에 두게 하는 것 같았다. 테이블만 걷어내면 가운데 구덩이에 다리를 담근채 족탕하는 기분일게다.
오랜만에 이성훈 선생님을 본 학술팀은 2차를 위해 숙소 10시30분 입실을 포기했고 순진한 우리작가들은 또 열심히 뛰어 숙소로 향했다.
루-루에 위반되지만 몰래 가져간 댓병 포도주를 마시며 내일 떠날 작가들의 송별회를 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락을 같이 한 탓인지 그새 정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