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이 전시에 출품한 제 작품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2005 부산현대작가회 정기전
전 시 명 : 회를 뜨다
전시일정 : 2005.12.7(수)~12.14(수)
전시장소 : 마린 갤러리 (해운대)
참여작가 : 감민경, 김경화, 김덕길, 김병권, 김성연, 김은주, 김현식, 방정아, 백성준, 서은경,
신성호, 예유근, 유성철, 이건희, 이상식, 이진이, 전혜원, 정만영, 정윤선, 정혜련,
한성희, 한영수
주제에 대한 글
《 회를 뜨다 》
글 : 김만석 (미술평론가)
1926년에 창간된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부인운동자와 회견기」라는 기묘한 글이 실려 있다. 일본의 어느 유명한 페미니스트가 조선에 와서 대학동창인 신문사 기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인데, 거기서 페미니스트는 공자의 말을 덧붙이며 이런 주장을 한다―우리의 지금까지 가져오던 도덕관념을 버려야 됩니다. 이 관념을 버리는 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 자각을 해서 버리는 수도 있겠고 재래와 같은 그러한 것과는 딴판인 행동을 실지로 이 세상에서 행하는 것으로 재래의 도덕관념을 마비시키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그러면 말씀이어요? 저는 항상 주장하는 것이 식색(食色)이 다 마찬가지란 말이어요. 그러한 관념을 가졌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요. 시장할 때에 밥 먹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 없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성에 있어서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C로 불리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섹스와 밥 먹는 것은 똑같은 것이니 전혀 부끄러울 이유가 없는 것이고 남성의 억압을 극복하는 데에도 여성의 성적 능력은 핵심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데에까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때의 어느 페미니스트의 주장이 지금도 여전히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삶이 여전히 그 시기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지 모른다. 즉, 식민지 조선의 삶의 양식과 오늘날 우리 삶을 구조화하는 시스템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억압과 지배의 코드는 무척이나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지배와 억압을 내면화하는 기제는 다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바로 이 때문에 신체와 일상에 대한 미시적인 관심이 요청되어야 한다. 권력이 억압과 지배를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층위가 ‘신체’이며 신체를 통해서만 권력은 지배와 억압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을 획책하는 다양한 힘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을 ‘회’를 떠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치밀하고 섬세하게 신체를 장악하는 (무의식적인) 힘을 최소한 까발리기 위해서라도, 회를 뜨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몸을 유기체적인 전체로 취급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치밀한 전략에 맞서 낱낱의 몸으로 분해하고 분리하는 전략이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식민지적 상황이 극복되지 않았다고 주장되는 우리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라도 회를 뜨는 작업은 필수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상상은 즐겁기 그지 없다 ―날 것 그대로의 몸을 섬세한 눈과 손으로 회를 떴을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