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의 개인전을 기쁘게 보면서
한 상정
(현재, 프랑스에서 만화 비평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는 87년에 미술에 광적으로 이끌려서 미술대학에 함께 입학했다. 그러나 6월 항쟁, 그 힘찬 역사는 우리의 좁았던 사고에 충격을 주었고, 미술과 다른 것들-사회, 정치, 경제, 문화, 사람들 등등-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크게 확대시켰다.
“대체 미술이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소용이 된다는 건가”라는 진지하고 힘겨운 고민은 우리의 대학 시절을 꿰뚫는 이정표였다. 거기에 따라 힘껏 뛰어다니던 학생 시절을 마감하고 사회인으로 섰을 때, 우리는 솔직히 구체적인 현실에 허덕여야 했다. 우리의 창작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가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이상이 옳긴 한건가, 또 사람의 사는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그려내고 있는가...하는 버거운 고민 속에 다양한 시도와 패배를 경험했다.
싸우고 버텨내기에 3년째, 이제는 많은 것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아주 작은 걸음이나마 성과를 소중히 여겨야함을 깨달았으며 그 성과가 바로 정아가 우리들에게 내려놓은 작업들이다. 정아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진솔한 작업을 해내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첫걸음이다. 정아와 나, 또 어디선가 성실하게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 조그만 결과물들을 각자가 선 자리에서 그대로 편히 보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생활처럼 이 작업들은 그녀의 생활을 모아둔 것이니까.
정아가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것 일수도 있고, 보면서도 어느덧 무뎌진 감성 속에 느끼지 못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의 삶들이 함께 쏟아져 나와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저자거리쯤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 이야기들의 여운이 집에 와서 오순도순 잠자리에 들었을 때 한번쯤 떠올려진다면 그녀는 정말 행복해 할 것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저 푸르른 하늘 높이 펼쳐진 흰 빨래에 채곡채곡 채워나가야 할 하루하루의 성실한 삶의 결과로만 다듬어질 수 있는, 좋은 시절을 향한 희망이라는 놈을 꼭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