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04.07.05 2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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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회 개인전 서문(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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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수진(전 아트스페이스 서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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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아의 즐거운 일기 
박 수진(전 아트스페이스 서울 큐레이터) 



그녀는 자신 주변에서 만나는 작은 이야기들을 일기처럼 그린다. 방정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다리를 칠만큼 공감하게도 한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려진 붓놀림은 상황 자체를 더욱 익살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일상 속에서 매일 마주치는 이야기들이기에 더욱 씁쓸하고 서글프다. 이렇듯 그녀는 삶의 일상들을 기록하고 수집하여 보여준다. 그녀는 삶이라는 피사체에 맞추어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지루함과 나른함의 순간을 낚아채듯 날쌔게 포착해 캔바스에 고정시킨다. 마치 곤충채집하듯 말이다. 
이렇게 채집된 일상의 모습에서 우리는 권태, 나른함, 사회적 소외와 일탈의 욕구 같은 일상의 이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림들은 천연덕스럽게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보여준다. 
방 정아는 이전에는 주로 삶의 어두운 부분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그려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고 사람 뿐 아니라 자연으로까지 관심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결혼하고 출산을 경험하면서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삶과 부딪히면서도 긍정과 인내, 포용을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그림은 중심이 아닌 주변의 큰 힘을 일깨워준다. 그녀가 다루는 여자로서의 삶이나 이야기들은 여성성에 대한 의식적인 발언으로 그려진 것도 아니지만 어떤 거창한 발언보다도 더 진하게 여성의 억눌린 구조나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다독거려 준다. 
그녀가 이번 전시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인 여성과 자연은 동류의 것이다. 이들은 생산을 담당하면서 세상을 비옥하게 한다.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방정아의 그림에는 의식적인 페미니즘 같은 것이 없어도 또 김 수현 식의 신경질적인 여성의 삶이 아니더라도 홍 상수 식의 비극적 일상이 아니어도 일상의 서글픔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아주 담담하고 소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겸손하게 작게 원을 소리 없이 그리기 시작하여 멀리까지 퍼지게 하는 큰 울림과 반향을 가져온다. 그녀의 그림에 그려진 것은 지겹도록 아름다운 삶이며 그 삶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여기에 방정아 그림의 힘이 있다. 방 정아는 애매하고 관념적인 허영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그림이 재미있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한다. 
그리는 자신과 보는 이들 모두 재미있길 바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이전 보다 더 가볍고 경쾌하다. 인물들도 보는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회화에서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곤 하던 배경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행동이나 동작의 강조로 순간을 정지시키는 그녀의 재주는 회화적인 입체작업을 제작하게도 했다. 마치 드로잉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한 그녀의 입체 작품들은 일상의 작은 모형으로 작가가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바램의 표현인 것이다. 
세계는 거창한 이야기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관념이 아닌 삶 속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작지만 아주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방정아 그림의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현실을 읽어내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힘을 본다. 그리고 삶에 대한 낙관과 긍정은 내일을 위한 희망을 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방정아의 그림에서 읽혀지는 부정은 긍정의 세계로 나가기 위한 과정이며 희망의 씨앗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