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04.07.06 21:46:55
  • SubJect
    월간 'If' 1999
  • Name
    장정화

stroad copy.jpg


다음은 월간 'If'지에 실렸던 (1999) 글 입니다 

지리한 일상에 관한 집중 
<방정아와 함진 개인전> 

장정화 



이런 꽉 짜여진 삶 속에도 한 구석에 빈 공간이 남아 있다.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림을 보러간다고 하면 우선 강북의 인사동과 사간동, 강남의 청담동이나 신사동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인사동의 전시를 빼놓지 않고 돌아보게 되는데, 아주 재미있고 인상적인 전시 두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방정아 개인전>(1999년 10월 6일~24일)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전시중인 <함진 개인전>(1999년 10월 20일~11월9일)이다. 

방정아, 여성 삶의 기록 
경복궁 맞은 편에 위치한 금호미술관에서 1층의 아트숍을 지나 지하전시장으로 가면 ‘방정아 개인전’이란 푯말과 함께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얼른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아주 재미있는 소설의 삽화같기도 하고 개인의 그림일기 같기도 하다. 

방정아는 서른두 살의 여성작가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인간이기보다는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야 했던 현실에서 겪은 갈등을 작품 하나하나에 옮겨 놓았다. 새로운 상황에 접할 때마다 느낀 놀람과 당혹스러움은 오히려 다행히 그림 그리는 작업으로 해소했다고한다. 그림 안의 모습들은 매우 익살스럽게 데포름화되어 있어 작품을 보면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되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가는 결혼으로 인해 갑자기 변한 삶의 형태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낯설음 등을 <소화불량> <낯선길>로 표현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달라지는 생리적 현상과 신체의 변화, 자기비하적인 생각들은 <숨찬교감>, <수혈세습>에 그려냈다. 특히 아이를 낳고 온몸이 부어 있는 상태에서 눈도 뜨지 못하는 시뻘건 아이를 처음 안아봤을 때를 생각하며 그려낸 <얼떨떨했어요>는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엄마가 되면 겪게되는 경험들, 예를 들면 임신해서 만삭일 때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모습, 젖몸살을 앓을 때 젖이 조금만 눌러도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습, 수건에 돌돌 말려 있는 갓난 아이, 설거지 개수대의 음식찌꺼기를 훑어내는 모습 등의 소재들이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후련함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방정아는 임신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는 아이의 출산과 함께 조금씩 누그러졌고 아이가 딸이란 점에 더욱 안심했다고 한다. 또한 딸아이의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아이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 주었으며 일년간 엄마 젖을 먹고 자란 딸아이와 엄마인 작가는 형용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방정아는 주로 삶의 어두운 부분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어 왔지만 이번 전시는 자신의 삶을 스토리적으로 전개했다. 자신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안정되고 정리가 되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가는 모습으로 작품은 이어진다. 남을 의식하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스스로 만족하고 작은 데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자세로 바뀐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솔직하고 소박하며 투명하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는 마치 메마른 화선지에 물이 번져 젖어드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경험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기에 보는 사람에게 쉽게 지나치지 않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중략- 

방정아와 함진은 개성이 강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터득하여 삶을 그대로 보여준 전시라는 점. 거창하지 않은 방법으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한다는 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