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미술, 그 이후-형상, 민중, 일상
팜플렛 글 중에서
방정아는 80년대 영향이 많이 보이던 초기보다 이즈음 작업들이 이념적 부담에서 자유로워진 듯 보이고 대신 일상적인 삶의 풍경에 깊이 있는 성찰을 보이면서 잔잔한 일상의 표정에서 도리어 한 시대의 이념과 인간이 처한 궁핍함과 분노가 드러난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이 전개되는 부조리한 삶의 모습과 그 부조리 사이에서 온당한 삶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눈물겹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부조리는 거창한 이념의 모순이 아니라 일상에서 너무 흔하게 만나게 되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와 슬픔과 놀라움에 대한 시선이다. 자기 가슴 부위의 옷을 위로 당겨서 적은 가슴에 대한 결핍증을 보이는 장면<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이거나 <권력 재편>이라는 다소 희화적인 의미로 처녀와 아줌마의 몸매를 비교하는 목욕탕 풍경들을 다룬 작품들, 개수구 구멍을 통해 씻겨내려 가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에서 싹이 튼 콩류 따위를 여전히 징그럽게 들어올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것>등은 일상의 작은 경험이자 무시로 만나는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에서 일상의 신중한 의미를 읽어내도록 하는 것은 그의 성과이자 1990년대의 성과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일상에의 주목이야말로 이념의 경직성을 현실화하는 유연성을 부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우리 체험으로, 사회의 체험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상적인 것들, 그것은 얼마나 길들여지니 않는 것들인가.
강선학 (부산 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