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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스오버 대담>(부산일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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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학림
<크로스오버 대담> (6) 시인 박청륭-화가 방정아 
호흡 다르나 예술 정점은 같아 
2001/08/20 



시인 박청륭(64)과 서양화가 방정아(33)는 사뭇 다르다.비유하자면 박청륭은 추상작업을,방정아는 구상작업을 주로하고 있다.박청륭이 '안'으로 휘어져 일그러진 욕망의 덩어리를 통해 인간 구원 문제를 이미지의 언어로 몸살앓았다면 방정아는 '밖'을 향해 사회적 소외와 일탈의 이면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붓질해왔다.최근 박 시인과 함께 방정아의 '안'을 보러 그의 작업실(부산 북구 화명동)을 찾았다. 

△박청륭=섬세한 붓질로 강어귀의 풀을 그린 작품 '복식호흡'은 좋더군요.튼튼한 데생력으로 갖가지의 녹색 풀,푸른 물과 들판에 눈이 다 시원해지더군요.장르를 막론하고 그걸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들은 많지요. 

―방정아=김해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흔적을 남기려 강과 바다가 만나고 들판이 끝나는,널따랗게 시원한 곳의 푸르른 느낌을 깊은 들숨에 실어 표현한 것이죠. 

△박=하지만 그,왜,지점토 작품있죠,'공허한 사랑'이 좋았어요.팬티차림으로 앉은 여성이 손을 등 뒤로 돌려 브래지어의 고리를 매만지고 있는 작품말입니다.고리를 푸는지 채우는지,주부인지 창녀인지 알 수 없지만 욕망의 앞자리도 끝자리도 끝없는 공허일 뿐이라는,인간은 그 공허의 깊은 수렁 위에 떠도는 존재라는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방=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그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강단은 추상미술이 미술의 모든 것이라는 풍토였죠.학생들은 강단에 나아가지 않고 외려 강단 '밖'에서 그 풍토에 맞서면서 리얼리즘을 익혔죠.그러니까 삶에 대한 질문을 시대와 사회에 대한 '복식호흡'으로 풀어나갔던 것이죠.80년대였답니다. 

선생님 시의 이미지는 행의 순서에 따라 스케치를 그리면서 연결시켜 보아도 쉽게 잡히질 않으나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그래서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따위의 색 수건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마술사의 모자같은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어요. 

△박=참 좋은 비유입니다.나는 행간의 여백이 많은 게 좋은 시라는 생각이에요.좀 알려진 저의 시 '구름'을 보죠. 

'적천사/하늘 위에 하늘을 이고 선/은행나무 아래/빛도 다 바랜 낙엽이 쌓여 있습니다/발을 디디면/수천 길 빠지고 말/내가 매일 흘리고 다니는/비듬의 무덤이었습니다./나는 빈 나뭇가지 하늘 위에/구름 한 점 찍었습니다.' 

낙엽이 비듬이다 라는 것은 내 스타일의 비유고요,그 다음 '하늘 위에 구름 한 점 찍는다'는 표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많은 느낌을 환기하려는 것입니다.그 느낌은 읽는 이 각자의 몫이죠.비유컨대 거기서 행간을 '복식호흡'하는 것이죠. 

―방=참 좋은 시예요.하늘 위에 구름 한 점 찍는다,는 표현…,선생님이 화가이시군요. 

△박=난 소스라치는 공포와 소름돋는 서늘함이 일렁이는 뭉크의 그림 '절규',산전수전 다 겪은 동래들놀음 할미탈의 뭉개진 코 같은 일그러진 이미지를 좋아한답니다(그의 대표시는 가마불에 혓바닥이 아우성치는 지옥도를 그린 '칠옥도'이다).욕망과 인간의 끝간데까지 가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욕망이 구원이라는 역설이죠.그게 삶이에요.불교 깨달음의 진짜 알맹이는 뭘까요?.깨달을 게 아무것도 없다….시적인 비유인가요(하하). 

그건 그렇고 방정아 씨의 그림 제목이 참 시적이고 함축적이더군요.'바람도 상품이다' 등등,그리고 손가락 빠는 아이업고서 길거리에서 꼬치먹고 있는 못생긴 아줌마를 그린 '집나온 여자'는 척 보아도 부부싸움했구나,스트레스 탓에 먹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더군요. 

―방=매달 1권의 시집을 읽는다고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러질 못해요.제목은 스케치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생각해요. 

저는 아직까지 저의 내면 속으로 가기에는 눈 돌려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환경문제라든지,제3세계의 기아문제라든지 그런 문제에 관심을 쏟고도 싶고….선생님은 독자를 의식않고 시를 쓰신다고 하셨지만 저는 관객의 눈치가 아니라 눈을 의식하죠.그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을 생각하는 거죠.그게 당분간의 제 호흡법인 것 같아요.그렇게 시대에 얹힌 우리 삶,이야기를 그리다보면 시대의 내면에 육박할 수도 있을 터이고 그러면 화가 방정아의 내면도 좀 묻어날 터이죠. 

(시인과 화가의 호흡법은 안팎으로 사뭇 다른 듯 했으나 뭇 예술의 정점에서는 같은 것일 수 있었다) 

최학림기자 theos@p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