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일상에 '붓길'을 내다
때론 역설적으로 때론 삐딱하게 새로운 의미 찾기
내달 1일까지 열린화랑
서양화가 방정아는 일상에 붓으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일상,아무런 표정없는 무뚝뚝한 일상이 새로운 의미로 다시 일어선다. 그의 붓길은 날마다,순간마다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는가,되뇌며 삶과 다시 소통하고 있다. 열린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8월 1일까지)의 주제는 '삶과 소통하는 풍경-꿈'.
'생명이 시작되기 전'을 보자. 겨울 천변을 거니는 여자의 쓸쓸한 뒷모습. 저쪽의 아파트도 회색으로 우중충,한창 신축 중이며 길섶의 풀은 갈색으로 메마르다. 그 사이로 먹이사슬에 걸린 새의 깃털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가 거기서 보는 것은 움트는 생명. 역설적이다. 그래서인지 갈색 풀숲 사이로 녹색이 감돌며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가볍게 나부낀다.
그의 그림이 던지는 메시지는 제목에서 절묘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상승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하고 있는 그림. 작가는 '채팅을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한다. 그래서 제목이 '채팅'과 '쳇'의 울림이 겹치는 '챗,쳇'.
'꼬레아,붉은 바위 마을'은 붉은 악마의 감동적인 응원 물결과 겹치는 작품. 붉은 계곡 사이로 그득 흘러내리는 뜨뜻한 온천물 속에 앉은 한 여자는 데워지고 있다. 붉은 인파의 물결 속에 데워지던 느낌을 재미있게 바꿔치기 한 것.
그 물결이 지나간 자리는 찌그러진 일상이며,그 자리는 아마도 쓸쓸할 것 같다. '오천원 짜리들'은 애 업은 아줌마가 색색으로 쌓인 헐값의 브래지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림. 오천원 짜리로 값매겨지는 육신의 덩어리,혹은 거꾸러져 가는 삶의 모습이 묻어나온다.
'자연''생태'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있다. 자동차가 겨울 눈길의 산중 도로를 아슬하게 기어가는 그림의 제목은 '그의 분노에 우리는 떨었다'. '그'는 허리 베어진 산일 터. 오리털 잠바를 입은 그림에 달린 제목은 '오리 스무 마리'다. 잠바 하나는 오리 스무 마리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뒤통수를 때리며 일깨운다.
하지만 사람에 의해 짓이겨지는 자연은 되레 사람을 감싸준다. 양지 녘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의 둘레에 서있는 향나무는 불꽃같이 가지를 뻗은 자세로 추운 잠을 밝혀주는 듯하다. 거기에 그는 '푸른 이스크라(불꽃)'란 제목을 달았다. 전시작품은 아크릴화 18점과 드로잉 10점. 051-731-5438.
최학림기자 theos@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