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거나 작품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곤 했다. 그랬던 갤러리 토크가 진화하고 있다. 인문학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담론을 확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작품 이면에 놓인 미술적 상상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갤러리 입장에선 두 번 세 번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작가의 입장에선 주제의식을 좀 더 깊고 넓게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작가와의 만남' 같은 일방적 해설 탈피
인문학자, 영화감독 대담 통해 담론 확장
· 서울 골목과 부산 골목
5년 전 작고한 사진가 김기찬은 30년 넘게 서울의 골목만 찍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자연스레 골목 안 사람이 되어갔고, 그들도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는 그의 말처럼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밥솥째 들고 나와 골목에서 어울려 밥을 먹는 아낙들이나 일렬로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처럼 골목은 집의 마당이 확장된 공간이었다. 김기찬은 무더운 여름 날 골목에서 젖꼭지를 물고 있는 쌍둥이를 사진 속에 담았다. 또 10년 뒤, 29년 뒤 이들이 커가는 과정도 카메라에 담았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이 '골목안 풍경'을 미술관 대화의 장으로 삼는다. 17일 오후 2시 사진가 문진우. 부산서 가장 많이 골목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우리 시대의 골목안 풍경을 이야기한다. 5월 1일에는 인도사를 전공한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 '역사학이 골목을 만나다'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최근 문현동을 비롯해 재개발을 통해 사라져 가는 골목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5월 15일에는 김홍희 사진가. '포토에세이 골목'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 최근 부산 골목을 훑고 다니는 그와 함께 '부산의 골목, 그 삶의 표상들'을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상일 사진가가 대담자로 나선다. 세 명의 이야기 손님이 추천하는 골목에 사는 아이들이 직접 골목을 찍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김기찬 사진전. 6월 13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 이국적 풍경화 속 타자
방정아는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를 다녀왔다. 겉으론 무심한 척 이국적 풍경을 그려놓았지만, 그림 속 풍자와 반어의 기법이 날카롭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잘 다듬어진 정원. 히피 스타일의 할머니가 흩어지는 물방울을 만지고 있다. 평화로운 정경에 방정아가 붙인 제목은 '숙자 할머니'. 외국인인데 웬 숙자? 쇼핑 카트에 뭘 잔뜩 싣고서 배회하는 노'숙자' 할머니다.
인디언을 보는 슬픈 시선도 있다. 황량한 대지 위에 직선으로 끝없이 쭉 뻗은 도로. 그 길 옆으로 어깨가 축 늘어져 하염없이 걸어가는 한 인디언이 있다. 그는 어디에서부터 걸어 왔을까? 반대편 갓길에는 로드킬 당한 짐승의 시체가 뻣뻣해져 있다. 미국식 문명의 그늘이 적나라하다. 김용규 부산대 영문과 교수는 '아메리카-방정아의 여행스케치' 전의 그림을 놓고 16일 오후 5시 미광화랑에서 '샌디애고와 보드리야르 그리고 인디언 문화'란 이야기를 펼친다. ▶방정아 전. 21일까지 미광화랑. 051-758-2247.
· 그림과 영화 속 '풀'
김은곤의 풀 그림은 뭔가 다르다. 김해 화포천 습지의 자연과 식물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주고자 했던 전직 노무현 대통령의 소망이 담긴 풀이다. 13일 오후 6시, '김은곤-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전이 열리는 갤러리 석류원에서 영화감독 김희진은 '청춘, 풀잎처럼 눕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칠수와 만수' '풀잎처럼 눕다'처럼 80년대를 청춘으로 보낸 이들의 자화상과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보여준 풀잎처럼 쓰러져간 흔적들,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처럼 영화 속 풀과 습지가 묘사된 방식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 아홉 편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청춘과 풀을 이야기한다. ▶김은곤 전. 18일까지 갤러리 석류원. 051-625-0765.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갤러리에서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거나 작품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곤 했다. 그랬던 갤러리 토크가 진화하고 있다. 인문학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담론을 확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작품 이면에 놓인 미술적 상상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갤러리 입장에선 두 번 세 번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작가의 입장에선 주제의식을 좀 더 깊고 넓게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작가와의 만남' 같은 일방적 해설 탈피
인문학자, 영화감독 대담 통해 담론 확장
· 서울 골목과 부산 골목
5년 전 작고한 사진가 김기찬은 30년 넘게 서울의 골목만 찍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자연스레 골목 안 사람이 되어갔고, 그들도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는 그의 말처럼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밥솥째 들고 나와 골목에서 어울려 밥을 먹는 아낙들이나 일렬로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처럼 골목은 집의 마당이 확장된 공간이었다. 김기찬은 무더운 여름 날 골목에서 젖꼭지를 물고 있는 쌍둥이를 사진 속에 담았다. 또 10년 뒤, 29년 뒤 이들이 커가는 과정도 카메라에 담았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이 '골목안 풍경'을 미술관 대화의 장으로 삼는다. 17일 오후 2시 사진가 문진우. 부산서 가장 많이 골목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우리 시대의 골목안 풍경을 이야기한다. 5월 1일에는 인도사를 전공한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 '역사학이 골목을 만나다'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최근 문현동을 비롯해 재개발을 통해 사라져 가는 골목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5월 15일에는 김홍희 사진가. '포토에세이 골목'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 최근 부산 골목을 훑고 다니는 그와 함께 '부산의 골목, 그 삶의 표상들'을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상일 사진가가 대담자로 나선다. 세 명의 이야기 손님이 추천하는 골목에 사는 아이들이 직접 골목을 찍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김기찬 사진전. 6월 13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 이국적 풍경화 속 타자
방정아는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를 다녀왔다. 겉으론 무심한 척 이국적 풍경을 그려놓았지만, 그림 속 풍자와 반어의 기법이 날카롭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잘 다듬어진 정원. 히피 스타일의 할머니가 흩어지는 물방울을 만지고 있다. 평화로운 정경에 방정아가 붙인 제목은 '숙자 할머니'. 외국인인데 웬 숙자? 쇼핑 카트에 뭘 잔뜩 싣고서 배회하는 노'숙자' 할머니다.
인디언을 보는 슬픈 시선도 있다. 황량한 대지 위에 직선으로 끝없이 쭉 뻗은 도로. 그 길 옆으로 어깨가 축 늘어져 하염없이 걸어가는 한 인디언이 있다. 그는 어디에서부터 걸어 왔을까? 반대편 갓길에는 로드킬 당한 짐승의 시체가 뻣뻣해져 있다. 미국식 문명의 그늘이 적나라하다. 김용규 부산대 영문과 교수는 '아메리카-방정아의 여행스케치' 전의 그림을 놓고 16일 오후 5시 미광화랑에서 '샌디애고와 보드리야르 그리고 인디언 문화'란 이야기를 펼친다. ▶방정아 전. 21일까지 미광화랑. 051-758-2247.
· 그림과 영화 속 '풀'
김은곤의 풀 그림은 뭔가 다르다. 김해 화포천 습지의 자연과 식물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주고자 했던 전직 노무현 대통령의 소망이 담긴 풀이다. 13일 오후 6시, '김은곤-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전이 열리는 갤러리 석류원에서 영화감독 김희진은 '청춘, 풀잎처럼 눕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칠수와 만수' '풀잎처럼 눕다'처럼 80년대를 청춘으로 보낸 이들의 자화상과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보여준 풀잎처럼 쓰러져간 흔적들,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처럼 영화 속 풀과 습지가 묘사된 방식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 아홉 편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청춘과 풀을 이야기한다. ▶김은곤 전. 18일까지 갤러리 석류원. 051-625-0765.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