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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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으면 됐고요>, <우리>, <오리 스무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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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화
이 글은 이번 개인전 서문을 써 주신 김동화 박사께서 제 작업실에 들렀던 감상을 재미나게 풀어 쓴 글이다. 


방정아(方靖雅) <없으면 됐고요>, <우리>, <오리 스무 마리> 

2010년 4월 8일부터 21일까지 미광화랑에서 열리는 ‘방정아의 미국, 멕시코 여행 스케치 전’의 전시 서문(序文)을 부탁받고, 전시 출품작들을 미리 한 번 보기 위해 김기봉 사장님과 함께 3월 12일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화명동의 화신중학교 근처 천변(川邊)에 있는 화가의 허름한 작업실에는 ‘녹색화실’ 이라는 이름의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 날 화가는 미광화랑 전시출품작 말고 화랑미술제와 다른 화랑에 전시출품이 결정된 작품들도 여러 점 제작하고 있었는데, ‘부산’, ‘가수협회 등록된 사람’, ‘설치는 녀석들’, ‘바쁜 관세음보살’ 등의 작품들이 마무리를 앞두고 화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산’은 진하게 화장을 하고 옷을 한껏 차려 입었음에도 어쩐지 싼 티가 나는 여자가 닭 한 마리를 안고 있는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었다. 화가는 꾸며도 어딘가 촌스러운 여자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닭처럼, 세련되지는 못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가 부산이라는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부산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통찰을 느낄 수 있는 기발한 작품이었다. ‘가수협회 등록된 사람’은,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전에 광안리해수욕장 로터리 근처에 있던 ‘체어맨’ 이라는 노래방 여주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노래방의 주인은 노래를 아주 잘 했는데, 실제로 가수협회에 등록된 회원이기도 했다. ‘체어맨’을 여러 번 가 본 나로서는 그곳의 칙칙한 실내 분위기, 촌스러운 색조의 소파, 그리고 노래방 주인이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정성껏 노래 부르는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림을 보는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치는 녀석들’은 넓은 마당 안에 고려시대 탑이 있는 집(온천동 수가화랑 근처)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컹컹 짖으며 달려드는 개들을 보고 놀랐던 일을 화면에 한 번 옮겨 본 것이라 했다. 반쯤 그려진 채, 화실 한 구석에 놓여 있던 ‘바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었다. 왜 이렇게 그렸냐는 화랑 주인의 질문에 화가는 ‘도와 줄 사람과 도울 일들이 천지인 이 세상에 두루 다니며 해결사 노릇하려면 관세음보살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라면서 능청스레 답변해, 우리 두 사람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녀의 작업에서 통상 나타나는 특유의 재기(才氣)와 날카로운 기지(機智)가 가일층(加一層) 돋보이는 그림이었다. 
구시가지(舊市街地)의 냄새가 풀풀 나는 이 동네에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길에서 마를 팔던 아저씨가 갑자기 작업실 문을 쓱 열고 들어와 값을 잘해 줄 테니 마를 사라고 때를 부리는, 약간은 사람냄새 나는 풍취도 있었는데, 화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재와 대상들이 바로 이런 생활의 현장에서 취재된 것임을 쉬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그녀의 2008년도 작품 ‘재개발지역의 오동춘’의 화면 속 배경은 바로 이 화실의 맞은편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무튼 화가와 인사를 나누고 전시 작품들을 살펴 본 후, 며칠이 지나 전시 서문을 작성해 작가와 화랑에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4월 1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미광화랑 사장님과 함께 작가의 화실을 찾아갔다. 화가는 전시 서문에 대한 답례로 자신의 드로잉 몇 점을 골라갈 수 있도록 나를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그 날 오후에 10권이 훌쩍 넘는 두꺼운 에스키스 파일을 하나하나 들추면서, 몇 시간에 걸쳐 석 점의 그림을 뽑아냈다. 
처음 고른 것은 ‘없으면 됐고요’ 라는 제목이 붙은 2006년 작(作) 100호 유화의 에스키스였다. 배가 지나가고 있는 해변에 새때들이 모여 있고 그 옆에는 새우깡을 들고 있는 여자가 서 있는데, 여자가 새우깡을 던지면 새들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가 새우깡이 없으면 일제히 여자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었다. 몇 년 전에 이 작품의 이미지를 어디선가 발견하고는, 참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씁쓸한 인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할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甘呑苦吐) 우리네 속인(俗人)들의 세상사는 방식과 생리를 까발리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몹시 마음이 뜨끔하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의 미묘한 겨룸에서 인생사(人生事) 이치까지 읽게 하는 재치가 몹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기에, 한 점은 이것으로 골랐다. 여자의 윤곽을 묘파한 선묘가 시원시원했고, 돌아선 새들을 그린 옆으로 ‘날리는 깃털’ 이라는 글씨도 남아 있었는데, 발상과 퇴고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는 싱싱한 느낌도 좋았다. 
그 다음 고른 것은 중국집 광고 전단지 뒷면에다 그린 ‘우리’ 라는 제목의 펜 스케치였다. 화가는 이 그림으로 2001년에 실크스크린 판화를 찍기도 했는데, 가사 노동과 작품 제작으로 피곤에 지친 그녀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잠든 채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얼굴에는 피로와 고단함이 잔뜩 묻어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아기의 연대감과 일체감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밴 가슴 뭉클한 작품이었기에 이 그림을 두 번째로 골랐다.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한겨레신문의 신문지 광고면 여백에 그린, 2002년 작 ‘오리 스무 마리’ 라는 유화의 에스키스였다. 실제 작품에서는 신문지에 그린 에스키스의 오른쪽 여자 부분만을 따로 떼어 그렸는데, 화가는 오리털 롱 파카를 구입한 날 우연찮게 제품설명서 딱지에 인쇄된 ‘이 제품은 우수한 품질의 20마리의 오리의 털이 사용되었음’ 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고한 오리들이 나 한 사람을 위해 속절없이 희생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걸 한 번 그려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인간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의 제물들 위에 서서 그들을 발아래로 굽어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리고 과연 그 희생들을 상쇄할 만큼 우리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거듭거듭 되묻게 하는 묘한 작품이었다. 
고른 석 점의 그림들 위에 화가는 자필로 서명을 남기면서, 마음에 드는 에스키스들만 밖으로 나가게 되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그녀는 ‘일단 내 손을 떠나버리면 비록 그것이 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작품에 대해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그림들이 밖에서 여기저기 나돌게 된다면, 그걸 보는 작가의 심사(心思)도 좋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김 선생님이 고른 에스키스 석 점은 모두 다 내 마음에도 들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 없이 내보낼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화가의 드로잉은 광고 전단지 뒷면에 그려져 있는 게 많았는데, 좋은 종이에 그리다보면 잘 그리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면 오히려 그림이 잘 안되기 때문에, 전단지 뒷면이나 막종이에 그린 것이 많다고 했다.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그려야 우연스레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그린 그림은 잘 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나는 작품을 할 때 반드시 에스키스를 옆에다 두고서 그립니다. 작품을 하다 보면 처음 그 작품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신선하고 생생한 느낌을 어느 순간 잃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에스키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다시 그 느낌들이 신기하게 살아납니다. 그래서 비록 아무리 사소한 메모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에스키스를 꼭 보관해 두는 편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에스키스 석 점이지만, 자기의 잘난 분신들을 밖으로 시집보내는 애틋한 작가의 심정이 환하게 읽혔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데생(drawing)은 진실이고 모든 본 작업(work)은 꾸몄다는 점에서는 어쨌거나 분식(粉飾)이다. 순수한 발상이 바로 흘러내린 메모 같은 순수한 석 점의 그림을 그저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가 그지없이 발랄하고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