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삶과 현실의 은유, 그리고 ‘저 너머’
옥 영 식
방정아의 화면은 주변의 일상적인 삶의 우여곡절을 보여준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갖가지 신산한 삶과 측은한 현실을 포착하고 숨은 진실을 드러내어 성찰하게 한다. 그의 최근작은 이러한 삶의 목격자로서의 시선을 지니되, 상황을 표출하여 소통하는 화법이 달라지고 있다.
세세하게 관찰하여 그려지던 서사적 사실성의 묘사법이 이전의 화풍이었다면, 지금은 은유적 표현성의 사의법으로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전에는 인물을 비중 있게 다루고, 상황을 의미하는 장소성을 현장감 있게 재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즈음의 작품에서는 인물보다 풍경이 우세해지거나, 아니면 장소성은 추상화되고 이미지로서의 인물만이 남는다. 더 나아가 가상공간으로의 심적 상황이 은유적으로 시각화되고 있다.
자동차 바퀴자국으로 어지럽힌 아파트 마당, 주차장에 그어진 완강한 직선과 대비한 수양버들의 나부낌, 혼탁하게 흐르는 강과 교각, 고기와 물도 없이 잡다하게 어수선한 수족관 들은 본질과 가치가 상실되어 버린 이 시대의 ‘남루함’의 시각적 표상이 아닐까. 마침내 삶의 터전을 잃고 부유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예컨대, 그치지 않는 눈물로 슬픔에 잠긴 여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 별 볼일 없이 된 신세에 화난 여성, 온갖 수심으로 우울한 여성, 망연자실한 탁구장 아줌마들은 꿈과 희망을 잃고 좌절한 이 시대의 인간표상이라 하겠다.
가진 자들의 권력을 손과 고기에 빗된 것에 이르러서 작가의 화법은 은유법으로 바뀌고, 이미 현실적 리얼리즘은 자취를 지웠다. 그래서 작품 ‘텁텁한 커피’처럼 미묘한 느낌과 감정을 더블이미지로 중첩하여 표현하거나, 실의에 젖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간가족을 한자리에 모은 군상인물도인 ‘THE HALL’은 기존의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 파격적인 초현실의 장면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짙푸른 물빛 속에서 유영하는 해파리의 자유스런 ‘생명의 삶’에 공명하는 작품 ‘자갈치’에 이르면, 형상의 경계는 사라져서, ‘저 너머’로 이어지는 미지의 시․공간을 예감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