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박영택이 그림으로 살펴보는 가족의 탄생과 재구성
한국 미술 작가들에게 가족은 무엇이며, 그들은 가족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궤적 속에서 가족이 어떤 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가족 이미지를 찾고, 그것이 그동안 급변한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 문제와 어떤 식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간 우리 미술의 흐름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그 흐름과 양상을 미술 작품을 통해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어린이들, 특히 학교에 갈 여유가 없었던 여자아이들이 동생을 들쳐업고 밭일하기에 여념이 없는 김기창과 이영일의 그림에서는 일제강점기 궁핍한 가족의 그림자가 엿보이며, 화가 자신의 대가족을 그린 배운성의 '가족도'는 붕괴를 눈앞에 둔 대가족 제도의 불안정한 표정을 담고 있다.
좋은 국민을 길러내려면 좋은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근대 서구식 사고방식도 우리 그림에 스며들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포근하면서도 결연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사진, 조각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이어졌다.
물론 근현대를 관통하는 가족의 큰 그림은 '즐거운 나의 집(Sweet home)'이었으나 이는 '환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1960년대 노래 부르는 딸과 하모니카 부는 아들을 뿌듯한 듯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김은호의 '화기', 나무가 우거진 산골 외딴 집에서 부부가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을 그린 이광택의 '살고 싶은 집'은 스위트 홈에 대한 환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팍팍했다. 흩어진 가족의 복원을 향한 소망과 가장의 한을 그린 장욱진, 희생하는 어머니와 가난한 이들의 흐린 표정을 담은 이중섭의 작품들은 한국 전쟁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슬퍼하고 결속의 의지를 다졌다.
1970년대 산업화로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했고 그림들 속 가족들 역시 헤어지고 떠나갔으며 고통을 겪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아들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슬픈 옆모습을 그린 오윤의 판화 '애비', 고향을 떠나는 농촌 부부의 모습을 담은 신학철의 '떠나가는 사람들'은 서글픈 우리 가족들의 초상이었다.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이루고 난 이후 가족 내부를 바라보는 화가들의 눈은 더 매서워졌고 가족은 회의와 의심의 대상이 됐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고발하는 윤석남의 '족보', 가정 폭력을 피해 아이를 업고 나온 여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을 그린 방정아의 '집 나온 여자'는 가족제도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보여준다.
최근에는 동성애와 독신, 국경을 초월한 다문화 가정 등의 기존 가족상과 다른 모습의 가족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나왔다.
저자는 "최근 한국 현대 미술에서 가족을 다룬 작업을 자주 접한다"며 "가족은 각 개인에게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공간이지만 기존의 개념이 급격히 와해되고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